옥스팜 스토리
41시간... 오롯이 내 힘으로 걸어 완주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하며...

친구에게 공유하기

38시간 내에 완주는 못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41시간 만에 완주한  참가자의 수기입니다. 

(모든 참가팀 중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온 참가자)

- 람보르기니팀 김예지 참가자

 

욱신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출근하는데 예사 인사로 누군가 주말을 잘 보냈냐고 물었다.
“잘 쉬었다”는 영혼 없는 대답 대신 “정말 좋았다”고 대답했다.

옥스팜 트레일워커를 참가하기 전 나는 그저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사회 초년생이었다. 하루하루는 참 스펙타클 하기도 한데, 그저 이런 일상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학교때는 이런 저런 일들에 관심을 가졌지만, 학생의 틀을 벗어난 이상 이젠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니까.

이런 일상에 무기력해질 무렵 참가신청을 하게 됐다. ‘이런 행사라면 무조건이지!’ 싶어서 주위사람들을 수소문 했고, 결국 학교 후배, 학교 후배의 친구 그리고 동기 한 명을 마지막으로 팀이 만들어졌다. 사실 옥스팜트레일워커 말고는 네 명 모두의 공통점이 하나도 없었지만, 우리는 그런 점이 더 의미 있어 좋았다.

사실 대회에 대해 무슨 준비를 했나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없었다. 가장 적은 액수로 시작한 기부펀딩도 낯간지러워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못해 간신히 마쳤고, 장거리 산행은 마음으로만 준비했다. 체력준비는 세 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니 꽤 건강관리를 잘 하고있는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로 대신했다. 넷 다 그냥 하다 보면 되겠지~ 하는 무식에서 비롯된 용감함만이 가득했는데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식함이 가장 큰 용기였던 것 같다.


네 명 모두 각자 일상에서 도망쳐오느라 허겁지겁 트레일워커를 시작했다. 대회 시작 자정이 다 된 시간에야 처음 모였지만 그저 모두 설레고 기쁘기만 했다. 대회 전날부터 시작할 때까지 그저 만나기 힘든 우리가 이렇게 만나 걷고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고, 이런 사람들이 모인 행사라 그런지 시너지도 엄청났다. 그런데 들뜬 마음과 즐거움도 잠시, 경사가 가파르던 체크포인트 2를 향해 가는 도중 후배의 친구인 진선이의 표정이 안 좋았다. 무릎이 아프다고 하는데, 속도도 쳐지고 무엇보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나도 무릎이 안 좋았던 적이 있었기에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까 걱정이 됐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초반인데 우리가 다같이 완주를 못하면 어쩌지? 하는 이기적인 걱정과, 완주가 무슨 의미가 있어? 어디까지나 다같이 함께하면 그걸로 된 거 아니야? 하는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네 명 같이 찍은 사진들이 가장 의미있다.

우리 앞으로 많은 팀들이 지나갔다. 무엇보다 진선이는 계속 진통제를 먹고 있었고 기운도 없어 보였다. 결국 체크포인트 4에 도착하기 직전 굳은 얼굴로 “이제 가야할 것 같아요”라는 말을 했다.

이 한마디를 하기까지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생각하니 순간 너무 미안했다. 사실 아프기 시작했던 오전부터, 체크포인트4에 도착한 야간까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었는데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당황스러웠다. 진선이, 그리고 진선이와 함께 내려가겠다는 민재를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민망했다. 자꾸 알아서 갈 테니 빨리 출발 하라고 하는데, 어쩔 줄을 모르고 우왕좌왕 하고만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던 후배 민재가 “언니, 우리 몇 년 전에 지리산 왔을 때 언니 혼자 무릎 아파서 먼저 내려갔을 때 우리가 언니 따라 내려가기 바랐어요?” 

“아니? 아니었지?”

 “근데 왜 그래요, 신경 쓰지 말고 상웅이랑 빨리 가요. 그래야 우리도 마음 편해!”

내가 참가하자고 바람은 다 잡아 놓고, 이렇게 또 먼저 보내는구나, 하는 죄책감과 그래도 완주하겠다고 가는구나, 하는 자책감을 가지고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갈 거라면 빨리 출발하기 바랬던 상웅이가 재빠르게 길을 찾아 어두운 산길을 안내했다. 이미 우리가 거의 마지막인 것 같았다. 산길을 내려가자 사람들이 모여 있고 관계자가 상황을 설명했다.

“거의 막바지이고, 지금 출발하면 체크포인트5까지 다시 산길이 이어집니다. 무리가 될 수도 있으니 중단을 원하시면 다음 체크포인트까지 차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대회 Sweep team의 참가자의 안전을 위한 중단 권고였다.)”

다시 앉아 한참을 고민했다. 어차피 힘도 들고 마음도 무거운데 그냥 내려가서 마음 편히 치킨이나 시켜 먹을까, 아니면 시간도 시간이니 다음포인트까지 차를 타고가서 조금이라고 눈을 붙일까? 내 안의 식욕과 수면욕이 이성을 차츰 지배해가는 찰나, 서너 팀이 차를 타고 이동하겠다고 했고, 출발을 했다가 몇 분만에 다시 돌아온 팀도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상웅이와 앉아 내적갈등만 했다. 서로 어떻게 하자고 하기도 미안해서 앉아서 멀뚱멀뚱 다리가 저릴 만큼 앉아있다가, 정확히 왜 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다시 출발 하기로 했다. 아마 지금 내려가면 엄청나게 후회할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이 늦어도 고!(GO!)를 외치며 다시 출발했다. 알고 출발하긴 했지만, 산길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사람도 없어서 분위기마저 스산한 산길 한복판에서 잠시 눈도 붙이고, 반딧불 구경도 하며 체크포인트5에 도착하니 시간은 4시가 넘어 있었다.

 

늦은 건 알겠는데, 딱 한 시간만 자고가자!

체크포인트 5에서. 꿀잠


정말 ‘꿀잠’이라는 말처럼 사과 하나씩을 먹자 마자 한 시간을 기절하듯 잤다. 일어나더니 상웅이는 다리가 남의 다리인 것 같다고 했고 나도 발바닥이 쑤셨다. 그래도 비상용 은박 이불 덕분에 편히 잔것에 감사하며 다시 출발했다. 밤새 산을 넘어와 평지는 이제 무리가 없겠지, 했지만 발과 무릎은 슬슬 파업을 준비하는 분위기였고, 이제 주위엔 우리 팀 말고 다른 팀은 보이지도 않았다. 스멀스멀 이제 포기할 타이밍을 찾는게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말도 못하게 아쉬웠지만 이젠 더 욕심을 부리는 대신 그냥 팥빙수나 먹으러 가야 할 타이밍인 것 같았고, 주최측에서도 체크포인트 6의 운영시간이 거의 다 되어간다는 이야기와 함께 위치를 묻는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지 얼마나 됐을까, 또다시 차 한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지금 차를 타고 싶으시면 시작점까지 태워드립니다“의 말에, 더 가겠다고 떼를 쓸 수도 없었고, 사실 우리도 지칠만큼 지쳤었다. 1km쯤 전 만난 참가자 한 명이 차를 탔고 우리도 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멈춰 있던 차에 탄지 1분쯤 되었을까? (차는 멈춰있고 움직이지 않았다.) 뒤에 오던 팀이 보였다. 그런데, 주최측 관계자와 함께 걷고있던 그 팀이 계속 진행하겠다고 했다. 우선 체크포인트 6까지만 같이 걸어볼까 냅다 내렸는데, 같이 있던 관계자에게 들어보니 시간이 지난다고 실격이 되거나 무조건 중단해야 하는게 아니라고 했다.

“야, 그럼 우리도 가야지!” 

나머지 공부를 하는 초등학생처럼 모두가 통과했을 길을 천천히 걸었다. 발이 쑤시고 졸렸음에도 불구하고 수려한 지리산 곳곳의 풍경이 다음 발 걸음을 내딛을 힘을 주었다.

힘든 것을 순간순간 잊게 만들어주는 수려한 풍경

이제 모든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했다. 거리상으로도 지금 걸어 왔던 것의 반의 반도 안 남았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런데, 시간은 사실 이미 오후 다섯시가 다 되어 갔다. 쉬지않고 가더라도 38시간 내에 닿을 듯 말 듯 한데 하나뿐인 일행 상웅이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전보다 속도도 뒤쳐지고 끊임없던 말 수도 적어졌다. 불안했지만, 이미 체크포인트8도 지났으니 별 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결국 상웅이마저 심각한 표정으로 15km를 남긴 지점에서 포기를 외쳤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상웅이의 발 뼈에 금이 갔다고 했다)

“요기가 아파.” 처음 느껴보는 부위의 통증에 당황스러워 하던 상웅이

 “뭐? 너까지 가면 나는?” 이라고 당장이라도 외치고 싶었지만, 얘도 포기하고 싶을 리가 없었다. 10km 남짓만 가면 완주인데, 포기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는 분명 심각하게 아픈 것일 테니까.

 “내 몫까지 걸어서 완주해!”

어디서 들어본 것만 같은 뻔한 말이었지만, 우리 팀을 대신해서 완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웅이가 떠나고 쓸쓸해질 찰나, 앞뒤로 한 두 번 마주치던 ‘또~라이’팀의 언니 두 명과 새로운 팀이 되어 본격적으로 함께 걷기 시작했다. 하루도 안되는 시간을 뒤돌아보니 참 신기했다. 같이 온 팀들과 찢어지고 새로운 팀이 만들어지다니.

계획에도 없이 급조된 팀이었지만, 완주라는 목표가 있기에 끝이 없는 것 같이 이어지던 임도를 즐겁게 걸어 나갔다. 그런데 날이 저물어가니, 아픈 곳이 없던 나 역시도 점점 오른쪽 무릎이 안 좋아져 점점 절름절름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또라이 팀의 언니들과, 또라이 팀을 응원하기 위해 중간에 마주친 서포터 두 분의 응원에 웃음을 잃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도착지점 근처부터 몇 분이 마중나와 주시더니, 다 정리 됐을 줄 알았던 행사장에는 더 많은 분들이 우리를 기다려 주셨다. 꼴찌 세 명을 이렇게 응원해 주시니, 감사도 감사지만, 민망한 마음이 앞섰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기다림’ 이라던데, 38시간을 한참 지난 41시간 동안 오롯이 내 힘으로 걸어서 의미 있는 완주를 할 수 있게 기다려 주신 분들이 정말 감사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너무 부끄러웠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더러운 물을 마셔보지 않은 내가, 아니 물이 없는 삶을 생각해 보지도 않은 내가 고작 이거 하나 끝냈다고 뿌듯함을 느낄 자격은 있는 걸까?

그래도, 매일을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인 내가, 비록 작은 노력이나마 내가 아닌, 지구 어느곳의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가장 기뻤다. 어쩌면 이런 스스로의 뿌듯함을 위해 걸었던 41시간 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런 나와 우리 팀의 도전을 응원하기 위해 펀딩에 참여해 준 사람들을 위한 시간 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부터도 나를 위해 쓸 때는 별 고민없이 쓰다가도, 누구를 도우려고 쓰는 돈에는 몇 번의 고민을 하는데, 선뜻 기부를 해준 이 사람들이 나를 도전할 수 있게 해줬으니까.

 혼자만의 완주가 아니라, 펀딩에 참여해 준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킨 완주라는 생각이 ‘혼자만 완주했다’ 는 미안한 마음을 조금 덜어주었다.

100km를 걷는다는 건, 마치 가난을 극복하겠다는, 어찌 보면 불가능한 것 같은 도전을 아주 조금이라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 물론, 가난을 해결한다는 건 100km를 걷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문제이다. 하지만, 많은 팀들이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100km라는 것에 도전했고 또 도전할 것처럼, ‘가난’ 이라는 문제도 이런 자세로 도전한다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든다.

적어도 이런 도전들이 가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만들 것이고, 또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해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과정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일 테니까.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 팀은 네 명 같이 다시 완주하자! 는 목표 아래 내년 대회를 준비하고있다. 내년의 트레일워커를 생각하고 있으니, 주위사람들에게 굳이 ‘내가 이런 걸 해요!” 하고 자랑하지 않아도, 마치 비밀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아니면 나만 아는 보물을 가진 사람처럼 행복하다. 물론 말은 비밀이래도, 나의 이런 행복을 주위 사람들도 같이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올해보다 더 많이 알릴 것이지만!


마지막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마친 옥스팜 트레일워커이기에 고마운 사람들께 인사를 드린다.
(다들 학생으로, 사회인으로 바쁜 와중에 선뜻 100km나 같이 걷겠다고 해준 우리 팀원들, 행사 전반적으로 세세히 신경 써 주시고 이런 멋진 행사를 기획하고, 지리산의 수려한 풍경을 모두 지날 수 있는 코스를 만들어 주신 분들, 더운 날씨에 몇 백명의 참가자들을 웃음으로 맞이해주신 자원봉사자 분들, 자연의 품을 내어준 지리산, 그리고 완주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의미만 보고 선뜻 기부에 응해준 지인들 모두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내 도전을 불평없이 응원해준 발도 고마웠어, 양말을 벗은 모습이 너무 못나서 조금 놀랐지만!​

<람보르기니>팀 응원하러 가기